[여의도풍향계] '비상 상황' 반복되는 정치권…의회 정치의 위기<br /><br />[앵커]<br /><br />여의도 정치권의 혼란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.<br /><br />야당에 이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까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수순에 들어갔는데요.<br /><br />정당 정치에 대한 위기의식도 고조되고 있습니다.<br /><br />이번 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짚어봤습니다.<br /><br />[기자]<br /><br />매일 같은 공방으로 비판에 무뎌진 정치권에서 최근 모처럼 뼈 아픈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.<br /><br />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적한 우리 정당 정치의 취약성입니다.<br /><br /> "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이 심각하다…반성해야 할 대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. 정당 정치가 얼마나 취약하면 모든 정당이 비대위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가…"<br /><br />대한민국 정치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숙연한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.<br /><br />'비상대책위원회'. 국어사전에는 중대한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날 우려가 있을 때 소집되는 회의 기관이라고 규정돼 있는데요.<br /><br />정치권에선 당 대표 사퇴 등 비상 상황이 있을 때 운영하는 임시 조직이라는 뜻으로 통용됩니다.<br /><br />말 그대로 비상시 꾸려지는 조직이니 정상적인 운영 방식은 아닌데, 지금 여의도에선 원내 1·2·3당이 모두 비대위 체제에 접어들었습니다.<br /><br />지난달 이준석 대표 징계 사태를 맞은 국민의힘.<br /><br />권성동 원내대표의 대표 직무대행 체제가 의원총회를 거쳐 추인됐지만<br /><br /> "뜻을 모아주셔서 오늘 결의문까지 채택이 됐습니다. 위기를 기회로 삼아 환골탈태의 각오로 변화하고 또 변화하겠습니다."<br /><br />얼마 안 가 대행 체제는 흔들렸습니다.<br /><br />연이은 말실수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 메시지가 언론에 포착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.<br /><br />이준석 대표를 향한 윤 대통령의 '내부 총질' 메시지에 당 안팎에선 논란이 이어졌고, 20%대까지 떨어진 국정 지지율과 함께 비대위 추진 논의가 급물살을 탔습니다.<br /><br /> "현 상황이 당의 비상 상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. 당헌 개정안을 빠른 시일 내, 8월 9일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의결하겠습니다."<br /><br />집권 100일도 안 돼 일어난 일입니다.<br /><br />국민의힘보다 앞서 야권은 선거 패배로 일찌감치 비대위를 가동했습니다.<br /><br />더불어민주당은 대선에 이은 지방선거 패배 후 4선 우상호 의원을 필두로 비대위를 꾸려 혼란한 당 상황 수습에 나섰습니다.<br /><br /> "당이 여러 가지로 위기 상황이라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당의 면모를 일신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서…"<br /><br />민주당은 이달 말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어, 새 당 대표가 선출되면 여당보다 서둘러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됩니다.<br /><br />지난 선거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혹평을 받은 정의당 역시 비대위 체제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습니다.<br /><br /> "우리 안의 문제를 찾아내고 죽을힘을 다 해 개선해나가야 합니다. 오늘 전국위원회는 그런 의지를 다시 모으는 출발점입니다."<br /><br />존폐 위기에 혁신안을 꺼내 들었지만 아직 효과는 미지수인 가운데, 거대 양당에 맞설 새로운 정치를 선보일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.<br /><br />이 같은 비대위 체제는 우리 정치권에서 수시로 되풀이돼 왔습니다.<br /><br />보수 진영에선 최근 10여년 간 8번, 평균 1년 6개월마다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습니다.<br /><br />그러나 내부 인사든 외부 인사든, 역대 비대위원장 다수는 당내 역학구도에 휩쓸려 쇄신 작업에 부침을 겪었습니다.<br /><br />사실상 유일한 성공 사례로는 2011년 '박근혜 비대위'가 꼽히는데요.<br /><br /> "어려운 시기에 비대위원장을 맡게 돼서 참으로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.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과 화합이라고 생각합니다."<br /><br />디도스 공격 파문으로 위기에 놓인 한나라당을 당명 교체와 현역의원 25% 공천 배제로 되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.<br /><br />유력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전권을 쥐고 혁신 작업을 이끈 결과였습니다.<br /><br />진보 진영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.<br /><br />대체로 선거 패배 후 급작스럽게 비대위가 출범하면서, 당 쇄신보다는 생존 투쟁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.<br /><br />그 가운데 성공한 비대위로는 '김종인 비대위'가 있습니다.<br /><br />2016년, 선거 연패와 계파 갈등의 늪에 빠진 민주당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'절대적 공천권'을 약속받고, 과감한 손질에 나섰습니다.<br /><br /> "공천이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는데 공천 과정이 비교적 무난하게 경과됐다고 생각합니다. 애석하게 탈락하신 분들도 계신데…"<br /><br />이 과정에서 '셀프 공천' 논란도 일었지만, 결과적으로 20대 총선 승리를 이끌었습니다.<br /><br />여야 모두 수시로 비대위가 등장하다보니 비대위 유형도 다양합니다.<br /><br />관리형, 혁신형, 절충형, 진단형 등인데요.<br /><br />대표적인 것은 쇄신 작업에 방점을 둔 '혁신형' 비대위와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역할의 '관리형' 비대위입니다.<br /><br />현재 여야 비대위 체제는 모두 관리형 비대위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.<br /><br />결국 새 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쥐고 리더십을 발휘할 전망이어서, 비대위의 역할과 권한은 제한적 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.<br /><br />그동안 대다수 비대위가 관리형 비대위에 그친 데다 '시한부 권력'으로 임기도 짧다보니, 위기를 수습하며 중립성을 지키는 일만도 벅찬 상황이 연출됐습니다.<br /><br />반복되는 '땜질 처방' 속에, 근본적인 정치 구조나 의회 민주주의 변혁에 대한 논의는 멀어져 온 것입니다.<br /><br />민생 위기와 감염병 사태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국회 공전 사태 후, 이제 당권 경쟁에 여념이 없습니다.<br /><br />여야 모두 총선 승리를 기치로 비대위 띄우기에 나섰지만, 당내 비상 상황에 매몰돼 국민의 비상 상황은 보지 못하는 듯합니다.<br /><br />미국의 작가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는 '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,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'는 말을 남겼습니다.<br /><br />스쳐가는 정치꾼에 그칠지, 위대...